<<2018, 2020 그리고 불일치>> 2편

불일치 ‘이끼’

지난 9월 2일 전국연대에서 ‘국경을 넘는 성착취, 해외로 성구매하러 가는 남자들’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 며칠 전에 토론회에 함께 해 달라는 연락을 받고 준비한 글을 대구여성인권센터 소식지로 담기 위해 글을 정리했다.이 글을 지난 십 수년 간 동남아시아를 다니며 겪은 이야기이고, 특히 2018년과 2020년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넘나들었던 시간들이며 성매매 남성모임 ‘불일치’까지의 고민을 담았다.

2020.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2020년 1월, 인도 여행을 계획 중인 세 친구의 제안을 받아 함께 했다. 여행의 안전을 위해 남성 일행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으로 제안을 했고, 2018년의 경험으로 피로도가 높아진 동남아시아를 여성들과 함께 간다면 나도 덜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태국-인도 여행으로 제안했다. 캣콜링이나 성희롱의 걱정에도 무사히 인도여행을 마칠 수 있었고, 나도 홀로 다니던 동남아시아와 친구들과 함께 한 동남아시아 거리는 달랐다. 다시 예전처럼 자유롭게 밤거리를 다니고 어떤 호객행위의 피로함 없이 편히 숙소에서 잠들 수 있었다. 태국 방콕까지의 여행을 마치고 일부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또 일부는 베트남 다낭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호치민에서부터 캄보디아-라오스의 여정은 다시 홀로 남았다.

베트남의 수도는 북부에 있는 하노이지만 경제 규모는 남부의 호치민이 훨씬 크다. 낯선 관광객의 시선에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다. 훨씬 상업적이고 훨씬 개방적이다. 2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있지만 밤길에 슬그머니 다가와 호객행위 하는 하노이에 비해 더 적극적이다. 여행자 거리 노상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면 가까이 다가와서 성매매 호객행위를 한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대뜸 “어떤 서비스를 원하냐”라거나 가격을 흥정하는 순간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하노이에서 경험한 마사지 업소와는 달리 불법 마사지 업소들이 드러내놓고 영업하는 경우들도 많았다. 물론 번화가에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적인 마사지 가게들이 있지만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VIP 마사지’, ‘남성전용 마사지’라는 간판들이 보인다. 일부 업소에는 한국어로 ‘남성전용 마사지’라고 적혀있었다. 이 업소 앞에 가격표는 ‘발’, ‘어깨’, ‘등’과 같이 마사지 부위와 시간에 따라 가격이 적혀 있는 일반적인 마사지 가게들의 가격표가 다르게 ‘A코스’, ‘B코스’, ‘C코스’ 등으로 쓰여 있었다.

이곳들도 물론 번화가에 있다 보니 카페나 식당에 있다 보면 맞은편 업소로 들어가는 남성들을 꽤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1명이며, 입구에서 가격표를 확인하지 않고, 호객 없이 들어가는 모습은 이미 해당 업소에 대한 정보가 있거나 이미 와 본 적 있는 모습이었다. 여행자 거리에는 서양인 관광객도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업소로 들어가는 남성들은 대체로 아시아인이었다. 친구들이 떠나고 다시 동남아시아에 홀로 여행 다니는 한국인 여행자가 되었다. 지난 십수일간의 여행과 다른 밤의 풍경이 펼쳐졌고 밤마다 호객행위에 시달리며 호치민 여행을 하루 일찍 마쳤다. 육로를 통해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떠났다.

태국과 베트남에 비해 캄보디아 수도는 여행자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체로 캄보디아에는 프놈펜보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에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고 며칠 뒤 시엠립으로 떠났다. 시엠립에 도착하고 다음 날 앙코르와트를 돌아다니며 며칠간 머물렀다. 프놈펜보다 훨씬 더 많은 호객행위가 있었고, 동남아시아의 성매매는 자국민보다 여행자를 대상으로 성행하며 여행자가 많은 곳들 위주로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숙소에서 펍스트리트를 오가는 길에 호객행위 하던 남성은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고, 다시 숙소를 돌아오는 길에 되물었다. “여기에 수많은 남성들이 홀로 돌아다니는데 왜 나에게만 집요하게 호객하느냐” 물으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 되물었다. 한국이라고 답하니 “유럽사람보다 한국인이 돈이 된다. 네덜란드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국인이 돈이 된다는 말은 수요층이라고 이해를 했는데 네덜란드 사람은 왜 말했는지 당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침 여행 중에 다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기회들이 꽤 있었고, 한번은 한 네덜란드 사람과 맥주 마시며 짧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스몰토크 이후 그가 건넨 말은 “이곳에 업소를 가본 적 있는지, 가봤다면 추천해줄 수 있는지” 나에게 물었다. 수많은 여행자들과의 대화 중 그러한 대화를 나눈 유일한 상대가 네덜란드 사람이었고, 네덜란드가 성매매 합법화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말한 ‘네덜란드 사람도 마찬가지’는 그러한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성매매 합법화 국가만큼 한국인들도 동남아시아에서 그러한 의미로 읽힌다는 말이었이라 생각된다.

캄보디아에서 마지막 여행지인 라오스로 향했다. 마침 라오스를 갈 때면 매번 창가석에 배정되었고, 그 덕분에 비엔티안 도착 직전의 라오스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비엔티안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한눈에 보였다. 몇 년을 주기로 찾아온 라오스는 공사현장이 늘어나고 있었고, 논과 밭이 있던 자리는 점차 큰 골프장들이 눈에 띄었다. 중국 자본이 철도를 깔고 라오스의 변화를 만들고 있다는 기사는 얼핏 들었지만 한국 관광객들의 골프가방을 보면 한국도 라오스의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루는 비엔티안 도시 외곽의 사원을 들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택시가 잡히지 않아서 무작정 걸어가고 있었다. 외곽이다 보니 대체로 도로 양쪽에 단층의 건물이나 텅 빈 벌판이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었는데, 저 멀리 10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이 덩그러니 있었다. 논이나 밭, 1층짜리 주택이나 상가로 쫙 펼쳐진 풍경에 높은 건물 하나가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건물에 가까워질 때쯤 주변 식당들에 저 건물이 뭐냐 물으니 누군가는 호텔, 누군가는 노래방, 누군가는 술집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2년 전 라오스에 왔을 때 호객행위 하던 남성과 나눈 대화가 기억났다. 그가 말한 ‘코리아 스타일’이라는 곳이 저곳이 아닐까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대낮임에도 정문으로 보이는 철문은 닫혀있고, 옆으로 한 사람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만 열려있었다. 그 시간에는 드나드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분명 호텔은 아닌 것 같고 정말 저곳이 영업을 하는 곳인지, 어떤 사람들이 드나드는지 궁금해서 길 건너편의 카페에서 2시간 정도 앉아 지켜봤다. 해가 질 때쯤 철문이 열렸고 붉은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왔다. 이내 들어가는 여러 대의 승합차에서 여성들이 내리는 모습이 얼핏 보이고 잠시 후 도착한 차에서는 남성들이 내렸다.

특히 눈에 띈 점은 베트남에서 본 남성전용 마사지와 달리 십수 명의 남성들이 단체로 들어가던 점이다. 대체로 중년 남성들이었고 자연스럽게 건물로 들어갔다. 그 건물 어디에도 KTV라든가, 가라오케라던가, 호텔이라는 간판은 없었지만 입구 네온사인에 라오스어와 함께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와 같은 한국어뿐이었다. 호치민에서 본 불법 마사지업소처럼 이미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아는 사람들, 이미 와 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점점 한국의 유흥가처럼 변해가는 동남아시아의 모습에 깊은 우려와 걱정들로 여행을 마쳤다. 특히 2020년 1~2월에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며, 특히나 서양인 여행자들에 비해 동양인 여행자들을 마주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몇 안 되는 동양인 여행자들은 호객행위의 중요한 대상이었고, 유독 심했던, 피로했던 시절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