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기

# 웃고_있지만_눈물이_나는 #60되기_전에 #갈_수_있을_때 #그냥_좋아서_하는

김효정(개여울)

나에게 지리산은 마음 한 켠에 존재하며 시와 노래, 소설 속에 있는 산이었다. 아마 20대 언젠가는 친구들과 올라 보기도 했을 텐데 그 기억들은 이미 바래져 있었다. 2년 전 생태계 복원을 위해 오랫동안 출입이 금지되었던 칠선계곡의 탐방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칠선계곡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이제 나에게 지리산은 내 발로 딛고 걸으며 느낀 실재하는 산이 되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올해 여름휴가 기간에 2박 3일 일정으로 화대종주를 다녀왔다. 화대종주란 구례 화엄사에서 경남 산청 대원사까지 46km의 지리산 능선을 걷는 것을 말한다.

첫째 날

전체 화대종주 구간 중 가장 힘들다고 하는(근데 안 힘든 구간이 있었던가?!) 화엄사-무넹기-코재-성삼재-노고단-화개재-임걸령-삼도봉-토끼봉을 거쳐 연하천까지 가야 해서 일찌감치 새벽 3시에 출발해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안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산길을, 희미한 헤드랜턴에 의지해 나아가야 했다. 길을 잘 찾아가고 있는가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그러나 또 한편 나를 믿고 한 발, 또 한 발 내디뎌 가며 급경사의 산길을 오르고 있노라면 육체의 힘듦으로 인해 모든 생각이 사라지는 순간이 오고, 새벽의 희미한 여명이 밝아올 때쯤 노고단에 도착하게 되었다. 산길을 걷고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여 별이 빛나는 산속의 밤을 보냈다.

둘째 날

연하천을 출발하여 벽소령, 세석을 거쳐 장터목까지 가는 일정을 시작했다. 연하천에서 벽소령 가는 새벽길은 맑은 공기와 이름 모르는 꽃들과 새소리로 산책처럼 즐거웠고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가는 길의 세석평전, 촛대봉, 연하선경의 아름다움은 산행의 힘듦을 보상해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장터목에 도착해서는 저녁을 먹고 해넘이의 아름다운 석양과 노을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째 고된 산행과 대피소 안의 여러 소리들에 왠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셋째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천왕봉 일출을 보고 치밭목 대피소를 거쳐 대원사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전날 잠을 못 자고 산행의 피로가 쌓여서인지 천왕봉 올라가는 길은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힘들게 올랐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고 하는 천왕봉 일출을 보게 되었다. 구름이 가득해 바다처럼 보이던 하늘 끝에서 빨간 해가 모습을 드러내던 순간에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벅참이 가슴 속에 차올랐다. 하산길이라 하나 산은 봉우리들의 연속이라 오르고 내리고를 거듭하여 치밭목에 도착했다. 점심과 식수를 보충하고 ‘대체 이 길이 끝나기는 할까’ 지쳐 갈 때쯤 유평마을을 만나 세상 속으로 돌아왔다. 또 한참을 걸어 대원사에서 화대종주를 마무리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다시 지리산의 곳곳과 그 길을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라 그리워진다. 산을 오를 때는 힘들지만, 육체적 에너지의 소진으로 오히려 맑고 고요해진 정신으로 능선을 타고 산길을 호젓하게 걷는 즐거움과 지천으로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과 나무와 새소리 간혹 동물의 기척까지(혹시 곰일까? 긴장하며) 자연 속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고요함이 좋았다.

인생은 선물인가? 짐인가?

항상 흔들리며 살아가지만 나에게 있어 산을 오르는 일은

그 요동치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주는 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