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끄러움에 대해 『존 오브 인터레스트』_진진

 근래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할 말이 많은 영화지만,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영화이지만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유대인들이 당한 고통을 재현하지 않는다. 단지 나치의 권력자인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소장과 그의 가족들이 영위하는 일상을 보여준다. 수용소의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 그들의 저택은 넓고 깨끗하며 정원은 무척 아름답다. 강제수용소 담장만 보이지 않는다면 여느 중산층 가정의 안락한 생활을 보는 것 같다. 담장 안의 고통과 무관한 안락함은 기이하고 생경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불편한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한다.

영화는 수용소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재현해 보여주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수용소 소장과 관련자들이 집단학살을 목적으로 가스실과 소각장 설계를 의논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수용소 안에서 발생하는 듯한 소리를 계속 들려주는 방식이다. 기계의 소음처럼 웅웅거리는 소리, 사람의 비명과 고함이 섞인 듯한 소리는 수용소 담장을 마주한 그들의 집이 나올 때마다 들린다. 그리고 담장 안 굴뚝에서 회색빛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 모든 장면들이 담장 안에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는 나치가 ‘최종적 해결’이라 불렀던 유대인의 절멸을 위해 지어진 곳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조금 알고 있다면 희생자들의 고통을 상상하게 되지만 영화의 재현 방식 자체는 희생자들에게 감정이입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관객을 희생자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가해자의 입장에 서보도록 만든다. 기어코, 그들과 나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이 인간인가!’ 하는 절망감과 함께, 영화관을 나와 고개를 들 수 없는 감정, 부끄러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며칠 전, 프리모 레비의 <휴전>을 읽다가 영화를 보고 느꼈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느낀 부끄러움보다 훨씬 깊고 복잡한 감정에 고개가 숙여졌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가스실로 보내질 인원 선발이 끝난 뒤, 그리고 매번 모욕을 당하거나 당하는 자리에 있어야 했을 때마다 우리를 가라앉게 만들던 그 부끄러움, 독일인들은 모르던 부끄러움,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올바른 자가 느끼는 부끄러움, 그런 잘못이 존재한다는 것에, 그런 잘못조차 존재하는 이 만물의 세상 속에 돌이킬 수 없이 자신이 끌어들여졌다는 것에, 그리고 자신의 선한 의지는 아무것도 아니거나 턱없이 부족하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것에 가책을 느끼게 만드는 바로 그 부끄러움이었다.”

(프리모 레비, <휴전>, 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