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손녀의 사랑스러운 케미, 『여름의 책』_진진

토베 얀손의 <여름의 책>은 할머니와 '소피아'라는 어린 손녀가 봄부터 여름까지 작은 섬의 오두막에서 지내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여섯 살인 소피아는 호기심도 많고 일상을 모험으로 만드는 어린이. 할머니는 그런 손녀의 둘도 없는 친구다. 할머니와 손녀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싶지만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케미가 상상 이상으로 재미와 감동을 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지루한 여름, 소피아는 하느님에게 무슨 일이든 벌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실제 폭풍이 치기 시작하고 소피아는 "이건 내 폭풍이야!" 하면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준 하느님에게 "저에게 잘해 주셨네요. 감사해요."라고 기도까지 한다. 그런데 웬걸! 폭풍이 너무 거세지면서 주변의 많은 것들이 부서진다. 할머니와 아빠는 배를 묶고 주변을 단도리하느라 바쁘다. 그제서야 소피아는 자신의 기도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며 울음을 터뜨린다. 할머니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하느님은 할 일이 많아서 다 듣지도 못한다고 달래지만 소피아는 믿지 않는다. "하느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걸 다 듣는다고 할머니가 그랬잖아." 이렇게 할머니의 말을 철썩같이 믿다니! 그런 손녀에게 할머니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번엔 내가 빨랐어."라고 말한다. 자신이 먼저 "오늘 아침에" 기도를 했다고. 소피아도 지지 않고 따진다. 할머니가 음식과 옷을 조금만 챙겨왔으니 하느님을 안 믿은 거냐고.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견디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그제서야 소피아는 수그러들어 할머니가 하는 일이 다 그렇다고 나무란다. "할머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하지 말고 잠이나 자.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풉! 자기 탓이 아니라 할머니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 소피아는 할머니를 위로하기까지 한다. 천진난만한 소피아가 너무 귀엽지만 그 이상으로 재치있는 할머니도 귀여우시다. 소피아의 자책을 씻어주려고 저런 묘수를 부리다니! 작가는 어떻게 이런 할머니를 생각해냈을까?

'나이 든 할머니와 어린 소녀'라는 주제는 토베 얀손의 어머니가 그녀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토베 얀손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와 어린 조카 소피아가 섬에서 휴가를 보낸 기억들을 떠올려 이 책을 썼다. 그녀의 어머니는 일러스트레이터였고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그림을 배웠다. 거친 바다와 섬을 사랑한 어머니와 보낸 시간들은 그에게도 이어졌다. 토베 얀손은 어른이 되어 작은 섬에 오두막을 짓고 20년이 넘도록 그곳에서 여름을 보냈다. 자연과 오랜 시간 교감한 시선이 이 책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그녀는 ‘소피아의 할머니’를 닮았을까? 그의 어머니가 그런 할머니였을까? 소피아의 천진한 마음을 존중해주는 할머니의 깊은 사랑이 뭉근하게 남는다. 사이사이 느껴지는 할머니의 초연함과 쓸쓸한 마음도 이 책을 읽으며 남는 여운이다. 여름이 가기 전에 찬찬히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