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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9.30 (목) 18:49 한겨레
성매수 남성들 혼쭐나네
[한겨레] ‘어리버리 안경’ ‘추리닝 사장’‘큰방 비듬’…
‘어리버리 안경’ ‘가슴 좋아하는 노인’ ‘추리닝 사장’ 성매매 사범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는 경찰이 대전 유천동 속칭 ‘텍사스촌’의 한 성매매 업소에서 압수해 30일 공개한 단골고객 장부에는 성매수 남성들의 외모나 행동의 특성이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큰방 비듬’ ‘티비방 착한 애’ 등처럼 장소를 적시하거나, ‘호빠(호스트빠) 애처럼 논 애’ ‘어린 변태’ 등으로 불린 손님도 있었다. 휴대전화 번호, 결혼 여부 등도 상세히 적혀 있었다. 경찰에 붙잡힌 업주 이아무개(48)씨 등은 업소 여성들에게 단골손님들의 특성을 기록하게 하고, 맥주 서비스나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특별관리를 해온 것으로 조사됐다.
성매매 피해여성 제보로 대전 업소 단골장부 들통
경찰 수사 형사처벌 나서
최근 검거 전국 468명중 성매수 남성 169명 최다
경찰은 이동통신회사의 협조를 얻어 단골손님 108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추적해 이들을 추가 검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함께 압수한 카드 매출전표를 분석해, 법인카드를 포함한 카드 사용자 329명도 모두 형사처벌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성매매특별법 발효(9월23일) 이전에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는 기존 ‘윤락행위 등 방지법’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경찰이 현장 검거자가 아닌 성매수 남성을 처벌하기로 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경찰은 앞으로도 수사 중 입수하는 고객 정보를 토대로 성매수 남성들을 추적·검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성매매 사범의 공소시효는 병역비리(3년)보다도 긴 5년이다.
경찰의 이번 단속은 이 업소에서 일해 온 김아무개(24)씨의 제보로 시작된 것이다. 김씨는 성매매 피해 여성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김씨는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9년 부모의 가정불화로 가출해 전북 익산의 다방에 취업했으나, 두달 만에 결근비·지각비 등 각종 벌금이 쌓여 되레 400만원의 빚을 졌다. 2∼3개월 단위로 20여곳의 다방을 전전하는 동안 빚은 1500만원으로 늘어났다. 업주들은 이 빚을 근거로 이른바 ‘선불금’을 받고 김씨를 팔아넘겼다. 청량리588, 용주골, 흑산도, 충남 아산을 거치는 동안 빚은 5천만원으로 늘어났고, 김씨는 대전까지 흘러왔다. 김씨는 업주 이씨가 단속에 대비해 고객장부 등을 업소 근처 편의점에 숨겨놓은 사실도 알아내 경찰에 알렸다. 김씨를 포함한 성매매 피해 여성 8명은 한 사람당 2천만∼5천만원씩의 선불금을 떠안고 있었으며, 하루 평균 5차례 이상의 성매매를 강요당했다.
경찰은 지난 23일 이후 모두 468명의 성매매 사범을 검거했는데, 성매수 남성이 169명(36%)으로 가장 많았고, 업주 98명(20%), 성매매 여성 75명(16%) 등이었다.
영업 형태로는 유흥업소 41건(17%), 퇴폐이발소 16건(6%), 집창촌 14건(5%), 스포츠마사지 13건(5%) 등이었다.
한편, 일부에서는 경찰의 의욕적인 단속활동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면서도, 성매매 산업에 대한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는 “‘매춘 재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성매매 산업이 기업화한 현실에서, 새 법이 성매매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한 것은 굉장히 진일보한 것”이라고 평가한 뒤, “그러나 부의 분배나 여성들의 취업난 등 사회 불평등에 대한 해결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 한 또다른 형태의 변형된 성매매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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