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서울 강남의 A룸살롱. 대학 동기 3명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모(33)씨는 마담으로부터 “1시간만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손님 대기실에는 김씨 일행 외에도 30여명의 남자들이 순서를 기다릴 정도로 ‘성황’이었다. 1시간 만에 ‘룸’에 들어간 김씨 일행은 몇 차례 퇴짜를 놓은 끝에 10여분 만에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골랐다. 김씨는 “이 집의 접대부 숫자가 200여명”이라며 “오늘 퇴짜를 놓은 아가씨만 50명이 넘는다”고 말했다. 김씨 일행은 이후 1시간30분 동안 양주 2병을 마시고 노래를 부른 후 룸살롱이 있는 건물 3층에 접대부 4명과 함께 ‘2차’를 갔다.
김씨가 찾은 룸살롱은 이른바 ‘클럽’이라고 부르는 곳. ‘2차’를 위한 호텔 혹은 모텔을 끼고 있고, 호텔과 바로 이어지는 별도의 엘리베이터가 룸살롱 내에 설치돼 있다. ‘술자리’와 ‘2차’를 패키지로 묶어 제공하는 것이다. 클럽에서는 ‘마담’이 ‘PD(Party Director)’로 불린다. ‘2차’가 필수이기 때문에 PD는 ‘파트너 디렉터’(2차 파트너를 골라주는 이)로도 불린다.
A룸살롱 K(36) 마담은 “고급 술집과 윤락이 결합된 형식이어서 30·40대 젊은 사람들이 ‘클럽’을 선호한다”면서 “하루 1000여명에 달하는 손님들과 200~300명의 접대부를 ‘1대1’로 엮어준다”고 말했다.
룸살롱을 대표로 하는 한국의 유흥주점은 매매춘시장의 또 다른 주범(主犯)이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한해 성매매시장 24조원 가운데 룸살롱과 단란주점에 종사하는 여성들과의 성매매에 성인 남성들이 쏟아부은 돈은 12조7850억원으로 추산됐다. 전체 성매매시장의 53%에 이르며, 올해 서울시청 예산(12조6600억원)보다 많은 규모다. 미아리·청량리 등 전업형 성매매 업소 매출액(1조8000억원)과는 비교도 안 된다.
강남의 또 다른 ‘클럽’인 B룸살롱. 지하 2층 지상 4층인 이 건물의 경우 지하는 룸살롱, 지상은 객실이다. 이곳의 접대부도 대략 200명. 서울 강남에만 접대부 100명 이상을 거느리는 룸살롱만 수십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급 윤락촌 수십 개가 서울 강남에 버젓이 있는 셈이다. 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들은 룸살롱·단란주점 13만2172곳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하루 23만7782건의 성매매를 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번창하는 룸살롱 뒤에는 조직폭력배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과거부터 조폭과 룸살롱 간 유착관계 소문은 무성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업화된 조직폭력배 조직이 합법화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통적인 조폭과 룸살롱의 관계는 조폭이 룸살롱의 ‘영업부장’ 자리에 앉아 영업이익을 가져오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룸살롱을 차릴 때 조폭 조직이 일정 지분을 투자한 후 매월 수익금의 7~8%를 거둬들이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한 대형 룸살롱 마담은 “강남을 중심으로 룸살롱이 대형화되면서 일반화된 수법”이라고 말했다. 일부 조폭들은 룸살롱 업주를 인테리어업자에게 소개하면서 고액의 커미션을 챙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룸살롱을 직접 운영하는 조폭도 적지 않다. 지난 2000년 7월 부산에서는 룸살롱을 경영하면서 세금을 포탈한 A폭력조직이 적발됐다. 실제로 수사기관 자료에서는 전국의 70여개 룸살롱이 100여개의 조직폭력배에 의해 운영되는 것으로 조사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수사기관에 적발된 경우는 흔치 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룸살롱들 상당수가 조폭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지만, 제도권으로 진입한 조직폭력배의 위법행위를 찾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섹스와 폭력·탈세 그리고 사치스러운 음주와 소비문화…. 이 시대의 룸살롱은 우리 사회의 ‘어두움’들이 공생하는 최적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룸살롱이 번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자화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