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1.1 (월) 18:01    조선일보    조선일보 기사보기 
 
"성매매 여성은 손님 택할 수 없는 상품" 
한국 온 日여성학자 우에노 도쿄大 교수

'상품' 에 단죄는 부당… 구매·알선자만 처벌을
"국가보다 내가 소중" 평화 위해 여성 연대해야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우에노 지즈코(56) 도쿄대 인문사회계 연구과 교수는 ‘논쟁적’ 지식인이다. 사회학자이며 여성학자인 그는 여성, 장애인, 노인, 환경 등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며 신국가주의(Neo-Nationalism) 시대 국가의 폭력을 경계한다. 대표 저서인 ‘내셔널리즘과 젠더’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논란이 됐다. 일본군 위안부를 민족 갈등뿐 아니라 ‘여성에 대한 가부장적 성 착취’라는 시각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 왔다. 지난달 29일 열린 서울대 여성연구소의 ‘아시아의 여성과 평화’ 국제학술회의에서 그는 ‘시민권, 군사주의 그리고 젠더’라는 주제 발표를 하며 “당신이 팔루자의 이라크 여성이라면 국가를 위해 기꺼이 자살폭탄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가. 여성의 국민화(nationalization of women)는 허상일 뿐”이라고 주장해 주목받았다. 주말에는 ‘또 하나의 문화’ 창립 20주년 행사에 합류했다.

―국가주의 혹은 민족주의로 번역되는 내셔널리즘은 여성 문제를 결코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2차 대전 당시 일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국민화’를 추진했다. 남성과 동등한 권리 구현을 위해 전쟁이란 국가적 목표에 적극 참가했다. 그러나 전쟁의 들러리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공범자 길을 걸었을 뿐이다.”

―1960년대 일본학생운동의 상징인 전공투의 일원이었던 당신이 여성운동으로 전환한 계기는 뭔가?

“가정과 사회에 가부장제가 있듯 운동 안에도 성 차별이 존재했다. 함께 활동하던 남자 동지들이 성적(性的)으로 자유로운 여성을 ‘공중변소‘라고 부르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건 제국군대의 군인들이나 사용하던 말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성과 계급 관점에서 읽어낸 당신의 주장은 가해국인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읽힐 수 있다.

“나는 위안부가 민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 역시 계급·젠더·민족 모두를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한국에서 위안부를 다룰 때 계급적 관점을 제외시키는 것이 아쉽다. 위안부가 된 여성과 위안부가 되지 않아도 되었던 여성들이 분명 있었다.”

―한국의 현 정부는 ‘과거 청산’을 추진 중이다.

“회색 지대(gray zone)를 어떻게 밝혀나가느냐가 포커스다. 억압적 상황에서는 복종과 저항이 동시에 나타난다. 또 그 둘이 항상 양분되는 것은 아니다. 흑과 백을 양분하는 것은 단순하고 위험하다.”

―한국에선 지난 한 달간 성매매특별법 시행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돈과 성을 교환한다는 단순한 관계는 신화에 불과하다. 성매매 여성은 손님을 선택할 수 없는 ‘상품’이다. 손님의 행위가 범죄라고 해서 상품을 똑같이 벌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상적인 법이라면 구매자와 알선업주만 처벌하고 여성을 범죄화시키지 않아야 한다.”

―가족 없는 노인들이 집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노년운동가, 장애인 운동가로도 바쁘다고 들었다.

“그 모두 여성이고 사회학자인 나의 영역이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뜰 수 있어 보람 있다.”

(김윤덕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si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