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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남자를 이야기한다] 여자는 모든 이의 딸과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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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인권센터 (12-08-21 10:47 / hit : 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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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news.nate.com/view/20120816n05674 [860] |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과 통영 미성년자 살인사건은 모두 성범죄자가 저지른 흉악범죄다. 사건이 보도된 직후 한 남자는 자신의 메신저 제목을 ‘여자는 애나 어른이나 모두 어머니다, 건드리지 좀 말아라 이 찌질이들아’라고 했다. 이 문장에서 가슴에 박히는 단어는 어머니와 찌질이다. 그리고 연상되는 단어는 패륜과 멸족이다.
제주 올레길에서 어처구니 없이 삶의 최후를 맞은 그녀는 범인이 잡힌 뒤 수목장으로 영면, 본인이 살아생전 그렇게 좋아했다는 숲으로 돌아갔다. 사건은 더 이상 언론에 등장하지 않는다. 제주도와 올레재단 등은 올레길 안전을 위한 대대적인 점검 작업에 들어갔지만 그 점검과 보완 작업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났던 1코스 이외의 모든 코스를 여전히 개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에도 올레길을 걷겠다며 항공권을 예약했다.
통영에서 어린 나이에 이웃집 남자에게 추행과 살해를 당한 소녀 이야기도 특별히 검색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미디어에서도 주요 기사로 다루지 않는다. 이제 이 사건들은 사회적 의제에서 사라졌으며 법적인 판결만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누이를, 딸을 잃은 남은 가족은 평생 그녀들을 ‘지켜주지 못했음’을 애통해하며 커다란 응어리 하나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한다.
이런 일련의 비극을 ‘도가니법’(공지영의 소설을 기초로 한 영화 <도가니>로 촉발된 아동,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 제정의 기회로 기대했던 성범죄 예방 관련 시민사회 단체나 뜻있는 개인들의 바람은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남자들은 당혹스러워진다. 세상이 남자 전체를 ‘예비 성범죄자’ 쯤으로 보거나 비루한 짐승, 찌질한 수컷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세상이, 특히 여성이 남자를 그렇게 판단할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싸잡아 취급 당하는 것은 성범죄가 암묵적으로 용인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이 성범죄를 모른 척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중견기업 과장으로 일하는 그녀는 주요 거래처와 가끔 회식을 한다. 회식은 주로 저녁 식사와 맥주 한 잔 코스다. 아, 여기서 코스란, 그녀가 참석하는 자리를 의미한다. 식사와 맥주 한 잔 자리에는 이쪽 회사와 그쪽 회사의 여직원들도 참석한다.
그리고 ‘맥주 한 잔’이 끝나면 여직원들은 일제히 귀가하고 갑과 을의 주요 간부들끼리 어디론가 향한다. 그 어디론가가 룸살롱이며 그곳에 간 갑과 을 모두가 2차까지 치른다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갑과 을의 참석자 모두 평범한 가정의 아버지요 남편들이다. 성매매법을 기준으로 보면 회식에 참석한 모든 사람을 심리적 공범자라 할 수 있다. 룸살롱에 가서 2차까지 나갔다 온 남자들은 현행법상 범죄자다. 그들은 항변한다. 거래처 관리상 어떨 수 없는 일이라고. 또한 범죄를 저질렀으나 그들이 처벌받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어쩌다 TV 카메라에 잡혀 경찰서에 끌려가는 장면에 등장하는 남자는 사실상 ‘재수에 옴 붙은 사람’이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은 관대함을 넘어 합의 수준이다.
이런 접대 문화에 대해 직장에서 항의할 경우 아마도 그(녀)의 ‘모가지’는 단칼에 잘려나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조그만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대형 플랜트 수주 능력은 전혀 없는, ‘하청 전문 회사’ 사장이다. 하청 또는 재하청을 받아야 회사를 꾸려갈 수 있지만 사실은 꽤 실속 있게 현금을 챙기는 알짜 기업이기도 하다. 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골치아프게 제안서니 사업계획서니 따위는 쓸 필요도 없어요. 그저 갑이 주는 일을 하나라도 더, 한 구간이라도 더 받아내는 게 우리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야. 나는 하청업자로서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함으로써 훗날 혹시 발생할지도 모를 하자에 대비하고 담당자에 대한 깍듯한 인사를 하면 되는 것이지.” 그가 말하는 최고의 접대 방법은 골프와 술과 여자와의 2차다.
그는 누가 담당이 되든 자신의 인사법은 변함없고 뒤끝도 없다는 사실을 대형 업체에 소문내는 것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담당이 바뀌면 전임자에게 거래처 성향을 묻게 되는데, ‘그 사장은 화끈하고 뒤끝도 없다. 문제가 생겨도 혼자 수갑 찰 사람이다’는 평가가 나오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접대 방법 가운데는 예의 ‘성접대’도 포함된다. 그에게 물었다. 접대 방법 가운데 ‘성접대’를 빼면 어떻겠느냐고.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누구 사업 말아먹으려고 그딴 소리를!”이었다. 그보다 더 며칠 전에는 룸살롱 PD(마담의 신조어로, 어떤 이름을 갖다 붙여봤자 성매매 알선자이다)를 인터뷰했다. 그는 최고급 수입차를 몰고 다니며 고가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부자 PD다. 20대 때는 룸에 들어가 접대도 하고 (거의)매일 2차에도 나갔던 경험이 있다. 그녀를 만난 이유는 ‘과연 접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차를 가고, 호텔 방에 들어가 그 사실을 털어놓고, 성행위 없이 그냥 돌아가는 남자를 본 적이 있냐’는 등 몇 가지 질문할 게 있어서였다.
그녀의 대답 또한 명료했다. ‘발기가 안돼서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손님은 굉장히 많이 봤다’고는 것. 그녀는 또 어쩔 수 없이 룸살롱에 왔지만 성매매가 절대 싫은 사람은, 갑에게는 자신도 가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호텔 입구까지만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빠이빠이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등, 성매매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갑과 을은 왜 성매매까지 꼭 같이 하는 것일까? 그것을 PD는 ‘공범의식’이라고 표현했다.
그 행위가 성범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을이 갑에게 “저는 오늘 생각이 없으니 혼자 가세요”라고 얘기했다가는 ‘그래, 너 혼자 고결해라, 난 걸레다’ 또는 ‘그럼 나도 안가’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온다. 거꾸로 ‘갑’이 을에게 “나 오늘은 그냥 집에 갈게”라는 말도 하기 어렵다. 그러면 을이 “왜 그러냐, 뭐 섭섭한 게 있냐, 아가씨가 맘에 안 들면 말씀을 하지 그랬냐” 등등 상황은 더욱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자발적인 아닌 특별한 사건이 발생해야 비로소 공론화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이다.
전국의 집창촌이 빠른 속도로 정리되었거나 정리되고 있는 이유는 재개발 사업 때문이지 결코 성매매특별법 덕분이 아니라는 일부 주장에도 귀 기울일 만 하다. 집창촌이 사라졌다고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 빈도가 줄어든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공급하려는 사람들의 교묘하고도 기발하기까지 한 수법으로 오히려 단속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뿐이다. 게다가 가출청소년들의 성매매 현상까지 확대되면서 대한민국은 전국이 성매매 현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쪽지 보내고 약속하고 돈 주고 받고 성매매하고 집에 가면 끝이다. 이렇게 쉬운 거래도 없다.
얼마전 14세 가출 소녀가 성매매를 하다 적발되었다. 성매매 상대 남자가 변태 행위를 요구하자 같은 가출 친구들에게 문자를 날렸고, 모텔로 몰려온 친구들이 변태남을 공갈협박, 돈을 뜯어내는 과정에서 경찰에게 검거되어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소녀가 밝힌 성매수자 명단에는 대략 100여 명의 성인 남자가 있었고 그 가운데 경찰에 출두한 사람은 20명이 채 안됐다. 출두해도 입건 정도의 수사로 마무리되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입건과 구속은 다르다. 입건은 경찰서에 출두해서 조서 쓰고, 별 일 없는 한 귀가 조치된 후 법적 절차에 의해 벌금형 정도를 받는 게 전부다. 인신 구속이 아니라 남자의 가족과 주변은 그 사실을 영원히 모를 수도 있다. 상대가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성범죄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가 공범자일 수도 있다.
딸이 아니라 엄마다, 어머니
엊그제 뉴스에 의하면 국토대장정을 진행하던 50대 인솔자가 폭력과 성추행 혐의로 입건되었다. 네 명의 여학생이 폭력과 성추행을 당했다. 경찰은 현행법을 이유로 그를 풀어주었고 그 즉시 국토대장정은 지속되었다.
그는 국토대장정 사업과 관련 이전에도 폭행과 성추행 의혹을 샀으며 전과도 스무 개가 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5년 이상을 같은 업종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법률이 성범죄자에 대해 얼마나 허술하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그런 경력으로 청소년을 상대로 한 국토대장정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국가가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하물며 혐의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경찰서에서 나와 동일 행사를 동일 참가자를 대상으로 버젓이 진행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 행사는 당장 취소되었어야 했고, 아이들의 부모에게 비상 연락을 해서 안전하게 귀가하도록 조치되어야 했고, 그 과정을 경찰이나 청소년 관련 당국에서 도와주었어야 했다.
성범죄는 일반 범죄와 달리 인간성을 말살하고 여성성에 결정적 물리적 상처를 줄 수 있으므로
법과 사회가 철저하게 방어하고 단죄해야 할 최악의 범죄다. 하물며 40대, 50대 남성이 자신의 딸과 같은 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행위는 도무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성범죄자, 또는 혐의자에 대해 야무지고 철저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성범죄 전과자가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고, 전자 발찌를 찬 채로 버젓이 유사 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성범죄자의 관리를 전자 발찌가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성범죄 장소도 전국 규모다.
직장, 학교, 여행지, 아카데미는 물론 교회나 사찰 등 종교 단체에서도 성범죄가 조직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근본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성범죄를 없애려면 강력한 제도와 함께 사회 구성원들의 철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고 있다. 현대 조직 사회에서 ’조직의 구성원으로’ 톱니바퀴의 단 한 개의 이빨로, 개인은 없고 오직 조직만 있는 오늘의 상황은 1936년 찰리채플린의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이미 예견되었던 현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직 우선 사회에서 산다 해도 의지가 있다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성찰을 하며 사는 게 어렵지는 않다. 서기 55년에 노예로 태어나 스토아철학의 기초를 만든 에픽테토스의 주장을 줄스 에반스가 정리한 다음의 지문을 눈여겨 읽어보시라.(줄스 에반스가 지은 <철학을 권하다>에서 인용)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우리의 몸
우리의 재산
우리의 명성
우리의 직업
우리의 부모
우리의 친구들
우리의 동료들
우리의 상사
날씨
경제
과거
미래
우리가 죽을 거라는 사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
우리의 믿음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순수 내부적인 것, 즉 자신의 마음 뿐이다.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못하겠다고 엄살 떨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마음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남자들의 철학적 사고가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은 아직 사회적 공감을 얻어낼 준비도, 진행도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여성의 인류로서의 역할과 누구나의 주변에 존재하는 ‘할머니’, 어머니’, ‘이모’, ‘고모’, ‘누이’, ‘여동생’, ‘딸’에 대한 개념을 자아 깊은 곳에 굳건히 담아둘 수 있다면 성매매나 폭력은 분명히 꺾이고 말 것이다. 그들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모성성’ 즉, ‘어머니’다. 개인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 태어났고 남자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탄생했다. 그리고 그 남자 또한 어머니에 의해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의 일생을 깊이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듣고 그 때 사진을 함께 보는 과정을 겪게 된다.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세상의 모든 여성은 어머니처럼 어린 시절을 거쳐 초경의 충격을 지나 서서히 어머니가 되간다. 그리고 언젠가 어머니,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는 자각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자각이 생겼다고 성범죄로부터 완벽하게 탈출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위의 지문에서 본 것처럼 세상에는 온통 ‘통제할 수 없는 것들’ 뿐이지만 내 마음만큼은 통제할 수 있으며, 그 마음 하나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최소한 견제하고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성범죄 예방을 위한 철학적 사고는 꼭 한번 시도해볼 만 한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작자나 혹시 읽고 계실 남자 독자 모두 성범죄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는 수컷 본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실천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남자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대해 ‘왜?’라는 화두를 던지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 생각하고 공부하고 사색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에 대한 존재 가치를 깨닫게 된다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선배로부터 답습한 ‘여자’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개인의 노력에 의지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빠르게 돌아간다. 한 성폭력 범죄자가 ‘내 안의 괴물을 나도 어떻게 하지 못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그의 발언은 자신의 범죄를 정신적 문제로 돌리려는 비겁한 요설일 수도 있고 또는 진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성범죄자의 인권을 운운할 필요도 없이, 법률적 절차, 즉, 판사가 선고한 형량을 살고 전자 발찌를 차고 출소하는 것으로 범죄의 일단을 마무리할 게 아니라 철학적, 심리학적, 인문학적 교정 프로그램을 거친 뒤에 비로소 법적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이다. 철학적 교정 프로그램과 함께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더 가혹하게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인륜을 저버리는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이 정상 참작을 이유로, 기타 여러가지 상황을 구실 삼아 가석방되어 피해자 집 근처를 배회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성 없이 가족이 형성될 수 없다. 오늘날 같이 심각한 성범죄를 간과하는 세대가 이어진다면 우리나라의 가족은 더욱 급속히 해체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멸족’이라고 한다.
남자들의 철학적 성찰만이 절벽으로 내달리는 이 시대의 행렬을 멈추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이든 이런 구호가 등장하게 될 것이다.
‘여자는 애나 어른이나 모두 어머니다, 건드리지 좀 말아라 이 찌질이들아’
[글 이영근 (프리랜서) 사진 i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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