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 기획] ‘자갈마당’으로 보는 공간적 윤리
정우선
자갈마당을 연구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 건 2019년 폐쇄 시기 자갈마당 걷기 사업으로 처음 그 내부를 들여다본 이후이다.
110년이라는 시간이 주는 무게만큼이나 자갈마당은 많이 낡아 있었고, 그 속의 방과 분위기도 지쳐있는 듯 보였다. 걷기를 하면서 가장 눈이 갔던 부분은 언니들의 다이어트약도 서랍장마다 쌓여있던 콘돔과 젤도 아닌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던 창이었다. 사용을 멈춘 지하의 방을 제외한 모든 방이 약속이나 한 듯 밝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는데 한 평도 채 되지 않는 방을 가득 채운 햇살에서 너무나 큰 괴리감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이곳에서 살아간 누군가는 한 치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막 시트지의 뒤편에서 매일의 고단함을 견디고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자갈마당을 연구 주제로 잡고 본격적인 구체화를 진행할 때 떠오른 장면도 미로처럼 얽힌 복도 사이사이의 작은 방들과 창틀이었다. 공간은 사람·사물·환경·관계 등의 다양한 서사를 함유하고 있으며 각각의 목적과 운영형태에 따라 개별적인 특성을 가지기에 성매매집결지 내부 건축공간을 파헤친다면, 성매매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우리 사회에서 성매매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사진, 지도, 영상 등의 시각 자료를 연구의 중심자료로 활용하고 건축물대장, 자갈마당 생성부터 폐쇄까지의 신문 기사, 자갈마당에 있었던 언니들의 인터뷰, 또 현장에서 기록하고 지원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보조자료로 활용하여 단순히 공간만 보는 것이 아닌 그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사라진 자갈마당을 다층적이고 통합적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대구여성인권센터로부터 제공 받은 자갈마당의 현장 사진과 직접 찍은 사진, 온라인에서 찾은 사진 등을 모두 합한 사진 자료의 초기 개수는 8,000장가량이었는데 이 중 중복된 사진과 공간이 아닌 현장을 답사하는 사람을 중심으로 촬영된 사진을 우선 제외하고 해당 자료는 중심자료가 아닌 공간의 연결성 등을 파악하는 부속 자료로 활용했다. 1차 분류 후 절반가량인 4,000장 정도의 사진 자료는 수집 당시 각 업소의 건물별로 세부화된 분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최대한 유사한 특징을 찾아내 동일한 업소로 유추되는 사진을 모으고 분류했다. 이 과정을 통해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는 7개 정도의 업소를 1차 선정하였다. 다음 단계로 분류된 업소별 사진 자료를 벽체, 바닥, 천장의 마감, 내부의 연결성 등을 기준으로 층과 공간별로 분류하였으며 유효한 분류가 가능했던 4개의 건축물을 2차 선정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2차 선정된 4개의 건축물에서 지번의 파악이 가능함과 동시에 층별 단순 분류 외에 유리방, 복도, 욕실, 주방 등의 공용공간과 본방, 타임방 등 개별공간의 분류가 가능한 건축물을 선정하였다. 이때 각각의 건축물이 위치한 입지적 요건 및 증·개축 여부에 따라 성매매집결지 내부 건축공간의 공통적 특성과 개별적 특징이 모두 도출될 것으로 추정되는 2호와 22호의 건축물을 최종 선정하여 재현했다.
선정된 건축물을 크게 외부공간, 실내 공용공간, 실내 개별공간으로 구분하고 외부공간의 경우 입면, 측면, 후면의 사진을 분류하여 각각의 면에서 나타나는 창호 및 개구부의 특징, 간판의 유무, 지번의 공시, 피난 및 탈출의 가능성 등의 특징을 분석하였다. 실내 공용공간은 유리방과 복도, 화장실, 욕실, 주방 등으로 구분하여 치수 측정이 가능한 사진 속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창과 문의 크기, 복도의 너비 및 계단의 폭 등을 세부적으로 분석했다. 실내 개별공간은 성매매여성이 거주하며 성매매를 진행하는 본방과 개별 건으로 활용하는 타임방으로 분류하였으며, 분류에 따른 방의 크기, 창호의 유무, 잠금장치의 위치, 조명 및 내부 구성의 특징 등을 분석했다. 영상자료는 가로변 건축공간의 위치와 입면의 모습, 인접한 건물과의 연결성, 건축공간 내부 개별실의 위치와 통로의 방향 등의 분석을 위해 시각 자료의 보조자료로 활용했다. 분석을 통해 밝혀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초기 스케치를 진행한 뒤 입면, 배면, 측면, 층별 평면도를 제작하여 공간을 재구성하고, 평면도를 기준으로 하여 최종 3D 모델링 방식으로 건축공간을 재현했다.
결과적으로 연구를 통해 대구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 건축공간에서 폐쇄성, 공간 구획의 무계획성, 방문자 중심의 공간 구성, 젠더 편향적 소품과 주술적 소품에 혼재 등의 일반적 특성과 건축공간의 입지적 요건에 따른 영업방식의 차이점 등의 개별 특징을 도출할 수 있었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일반특성과 개별 특성을 통하여, 성매매집결지의 건축공간이 방문자인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내부의 여성에게는 폐쇄적이고 고립감을 강화하는 통제적 공간이었음을 밝혀냈다. 그뿐만 아니라 구술자료 분석을 기반으로 철거되어 사라진 성매매집결지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성매매집결지를 단순히 역사성이나 시간성과 연결해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기억이 축적된 장소로 이해해야 함을 밝혀냈다. 또한 도시 공간 안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공간을 단순히 물리적인 정비나 폐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것은 과거 그 공간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소멸시키는 일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국내에는 10개 이상의 성매매집결지가 남아있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도시재생이나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돈이 되는 땅, 보기 불편한 공간이라는 틀에 박혀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냉정하게 분석·평가하고 다시 그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한 반성을 잊은 채 나아가기에 급급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구를 통해 적용된 기술과 연구 방법이 성매매집결지 철거과정에서 그 속의 여성들과 지역사회의 기억을 잘 기록하여 누군가의 삶을 지우는 방식이 아닌 회복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자본주의 논리 아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자갈마당 철거 과정에서 그 속에 있었던 사람과 기억을 지우지 않기 위해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했던 대구여성인권센터 활동가들의 노력과 마음을 알기에 작은 부분 하나도 허투루 연구할 수 없었다. 그러한 결과로 부족하지만 공간을 통해서 성매매시장의 불합리함과 비인권적인 실체를 드러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2024년 활동가 역량강화 교육의 첫 포문을 열 수 있게 되어 영광이었다. 그간의 슬로건 중 가장 좋아하는 슬로건이 We Will Win!인데, 좀처럼 변화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우리는 작은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고, 크지 않지만 작은 승리들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은 변화와 승리가 모여 큰 승리를 이룰 때까지 부디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기를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나 또한 대구여성인권센터의 회원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동지로서, 그리고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닫힌 문을 두드리고 막힌 벽을 부수어 나갈 것이다. 대센 화이팅♡
[2023, 경북대학교, 건축공간 재현을 통한 성매매집결지 특성 분석에 관한 연구 : 대구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