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_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_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진진

작년 알통 소식지에 ‘한쪽’이라는 코너를 만들어 글을 썼다. 처음에는 재미있겠다는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쓰면 쓸수록 한계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책과 영화를 좋아해서 매달 보는 것이 있다고 해도 감상을 글로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인스타그램에 남기는 짧은 단상이나 메모가 아니라 어느 정도 분량을 채우는 글쓰기에는 나의 감정이나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가보는 끈기가 필요했다. 책을 읽고 사유하는 과정을 좋아하지만, 글쓰기는 훨씬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기에 어려웠다. 그걸 느낄 때마다 국어를 싫어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 건 왜인지. 아홉 살까지 일기도 글짓기도 독후감도 스스로 쓰지 못해 언니가 불러주는 대로 썼다. 한 문장 불러주고 생각해 보라 하면 ‘몰라’ 하면서 울음을 터뜨렸던 초등생. 그런 내가 글을 정기적으로 썼다는 게 아이러니다. 글쓰기는 나의 한계를 깨닫게 했지만, 나를 알아가게도 했다.

서두가 길어졌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 하나 있다. 『세계 끝의 버섯』이라는 책인데, 송이버섯을 중심으로 그물망처럼 펼쳐지는 이야기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다. 송이버섯의 생존 방식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송이버섯을 채집하고 사고파는 관계가 글로벌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드넓은 맥락을 읽어가다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저자는 인류학자로 “2007년부터 송이버섯 세계를 연구하는 모임 ‘마쓰타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해 송이버섯의 다종적 결합 및 송이버섯을 둘러싼 상품사슬을 세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오리건주에서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사람들은 백인뿐만 아니라 라오스, 캄보디아, 일본, 중국 등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인종이 다양한데, 그들이 버섯 채집을 하기까지의 역사와 맥락 또한 모두 다르다. 버섯 채집을 위해 모였지만 동기도, 채집 방법도, 생활 방식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자연에서 채집한 송이버섯이 글로벌 공급사슬로 팔려나가는 과정 등 새롭게 알게 되는 세상이 나의 인식을 넓혀주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개념 중에 ‘오염된 다양성’이라는 말이 있는데, 생물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어떤 생물종이든 살아 있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협력이란 차이를 수용하며 일한다는 의미로, 이것은 곧 오염으로 이어진다. 협력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는다.”(p.64) 오염이라는 말이 낯설면서도 이해되는 것은 인간이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고 어떤 면에서건 서로에게 물들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오염이라는 말이 나쁘게 느껴지는 것은 학습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인간이 추구해 온 진보와 안정성이 유효하지 않음을 전제하고, 불확정성과 불안정성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전제이지 않은지 질문하고 있다. 송이버섯은 가지런하고 단정한 숲에서만 자라지 않고 벌목되고 불에 탄 숲에서 생존한다. “송이버섯은 인간이 교란한 숲에 산다. …… 송이버섯을 따라가다 보면 환경 교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우게 된다.”(p.26) 송이버섯의 존재 방식은 인간이 옳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송이버섯의 생태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무엇일까? 진보와 안정성이라는 꿈과는 거리를 두고, 서로 마주치고 얽히고 오염되는 협력의 생존을 상상해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